詩 • 든 • 손

in hive-160196 •  8 months ago 

가을이 떠났다.
가을이 우리 곁에 머물고 있을 동안
단풍을 가장 아름답다고 하기도 했고
국화를 가장 사랑한 사람도 있었다
익어가는 결실에 감사하는 마음도 있었고
가을 하늘을 두고두고 그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오랜 시간
가을을 기다리고
가을이 떠난 뒤에도
가장 오래까지 가을을 지키는 건
가장 연약하고
화려하지도 않았던 억새풀이었다

가을도 그 마음을 알기에
억새 잎의 서슬에 베인 상처에 피가 멎기도 전
번번이 그 숲을을 다시 찾아
함께 나부끼고
홀씨를 얼싸안고 먼 길을 갔다

오늘도
억새풀의 긴 목이
가을을 바라고 있었다

억새풀이 되어/ 김해화

우리 억새풀이 되어야 써
칼날처럼 뜻 세운 이파리로 바람까지도
비겁한 하늘이라면 하늘까지도
목베어 거꾸러뜨리고
서 있어야 써 우리 억새풀이 되어

사랑과 미움을 가릴 줄 알아
사랑이라면 뿌리째 뽑혀 죽어도 좋은 복종으로
미움이라면 그런 사랑까지도
사정없이 썸벅썸벅 베어버리는 반란으로

하나 보다는 둘, 둘 보다는 넷
넷보다는 더 많이 더 많이 모일 줄 아는
억새풀
바람 사나울 수록
어둠이 깊을 수록 또렷이 깨어나
소리지르며 눈 부릅뜨는 풀
여리디 여린 풀 아니고
뼈있는 풀
우리 억새풀이 되어야 써

Authors get paid when people like you upvote their post.
If you enjoyed what you read here, create your account today and start earning FREE STEEM!